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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2020.3~4월호)기고문: 모든 아이들에겐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디토1 2020. 4. 8. 15:34

모든 아이들에겐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2020. 3~4월호

 

 

정은주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웰다잉 강사, 전국입양가족연대 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juin999@hanmail.net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

 

사랑하는 나의 아가 준희(가명).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별이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미국에서 적응해야 할 너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네가 자라면서 힘이 될 것은 무엇일지 생각하고 준비하지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단다.’

위탁모 강은정 씨가 아기와 헤어지기 한 달 전 쯤 쓴 편지다. 은정 씨는 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엄마로 2018년부터는 입양대기 아동을 위한 위탁을 시작했다. 입양가족 모임에서 자주 보고 눈인사를 나누곤 했지만 나는 그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처음 은정 씨를 주목한 건 어느 모임에서 내게 편지봉투를 내밀 때였다. “우리 준희가 미국으로 입양 가기 전에 주변 분들이 아기에게 편지를 써주셨으면 해서요.” 나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쓰며 은정 씨를 처음으로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면서 어떻게 어린 아기를 위탁하게 됐을까? 위탁모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입양가족으로 살아가면서도 위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은정 씨가 위탁 중인 준희를 데리고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어린 준희의 사랑스런 미소에 반해 손 내밀곤 했을 뿐이다.


은정 씨는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다 당분간 쉬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18년 초 입양특례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서 입양이 위축될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졌고, 그는 시설에 남아 있는 아기들에 대한 연민으로 위탁가정을 자임했다. 국내 입양의 특성상 여아들에 비해 남자아이들의 입양은 어렵다. 대부분의 부모가 여아 입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수의 남자아이들이 해외입양을 떠난다. 은정 씨는 입양 전에 한 아이라도 시설이 아닌 위탁가정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게 하고 싶었다. 여아였던 첫 아기는 위탁 2달 만에 국내가정으로 입양이 되었다. 그러나 남자아이인 두 번째 아기 준희는 생후 5개월 때 와서 16개월 동안 은정 씨 가족과 함께 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가장 예뻤던 시절, 이가 나고 걷고 말하기 시작할 무렵 오롯이 위탁가정의 막내아들로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준희는 이제 미국의 한 가정에서 막내로 또 다른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해외입양은 생부모로부터 강제 분리된 아동학대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대두 되고 국내입양도 위축되고 있는 지금,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 해 동안 발생한 보호 대상 아동은 3,918명으로 약 36퍼센트는 아동학대, 24퍼센트는 유기 및 미혼부모나 혼외자 등의 사유로 보호 조치가 되었다. 이들 중 약 62퍼센트가 시설에 입소, 나머지가 입양과 가정위탁 등으로 가정보호를 받았다. 오래 전부터 아동보호에 있어 탈시설을 실천해온 서구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참으로 초라한 성적표다.

매년 만 18세가 되어 시설에서 퇴소하는 우리나라의 보호종료 청년은 약 2,500여 명이다. 정부는 다양한 형태로 그들의 자립을 지원한다. 작년 4월부터는 시범적으로 월 30만원의 자립수당도 지급해 이전보다는 다소 형편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립정착금 35백만 원을 들고 만 18세에 혼자 사회로 나가는 청년들의 실제 삶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시설을 나온 청년들이 물질적인 결핍은 차치하고 삶의 위기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가혹한 현실이다.


2018년 초 고아권익연대라는 단체를 설립한 대표 전윤환 씨는 7세 때 들어간 시설에서 퇴소하기까지의 삶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시설 생활은 비참합니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으려면 생존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선배들의 눈을 절대로 봐서는 안 됩니다. 항상 아래로 깔고 다녀야 합니다. 똥을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합니다. 옷을 벗으라면 벗어야 합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진짜 죽을 수 있습니다. 대들었다가 호미로 머리를 찍혀서 평생 뇌전증으로 사는 선배가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과거 일이기에 지금의 시설은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지금은 달라졌을까?


나는 다음 기사를 보며 시설의 참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충북 참여자치시민연대는 5일 아동학대 등 문제를 빚은 아동양육시설 관련 청주시는 해당 양육시설을 철저히 조사해 강력히 처분하고 시설장 교체 및 경찰 고발을 하라고 촉구했다. 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청주시가 어제(4) A시설에 대해 내린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은 너무도 가볍다며 이같이 밝혔다. 단체는 “A시설은 2017년 원아 간 성폭력 사건으로 행정처분을 받고 지난해 생활지도원이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2018년에도 원생 간 성폭력 의심사건과 시설 종사자와 원생 간 성매매 의혹이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나는 기사를 접하고 이 같은 일이 특정 시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어디든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설의 집단양육이 갖는 태생적 한계 탓이다.


탈시설의 첫 단추

 

지난해 12, ‘아동의 대안적 양육에 관한 가이드라인채택 열 돌을 맞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이중 하나는 고아원의 해악을 널리 알려 점차적으로 고아원이 없어지도록 한다이다. 미국에서 탈시설이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은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어 보호가 필요한 아동 자체가 줄었고, 미혼모의 양육에 대한 지원이나 입양, 위탁 등의 복지제도가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한 가지의 틀만 강조해서는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최근 미혼모의 탄생을 쓴 권희정 씨는 서구에서 1970년대까지 지속된 베이비 스쿱 시대가 한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입양을 통해 미혼모성을 병리화하는 과정이고, 입양 활성화라는 언설로 미혼모성이 탈모성화됨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대다수 국민, 입양기관 등이 미혼모를 억압해왔다면 이를 풀어야 할 첫 단추는 무엇일까? 저자는 입양을 비판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대단히 앞뒤가 바뀐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혼외 출생 아동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여 국내 입양조차 비밀리에 진행할 만큼 낙인을 찍고, 우리 사회 안에서 책임지기 싫으니 해외로 보내는 데에 앞장선 이들은 누구인가? 입양기관들을 문 닫게 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미혼모의 자궁을 입양모의 가슴으로 대체했다고 말하며 미혼모 인권과 입양을 계속 대립각으로 가져가는 저자의 주장은 편협하고 단순한 논리다. 모성은 자궁을 가진 여성에게 국한된 신비하고 절대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입양을 보낸 미혼모들은 시대의 희생자임이 분명하지만, 양육을 택한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사회구조 안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탈모성화라는 말은 자칫 모성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용어다. 미혼부의 탈부성화라는 말이 어색하다면 모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성을 신비화하지 말고, 탈모성화라는 말 대신 한국사회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억압했다는 말로 대체하기 바란다. 지금 모성 운운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혼외출생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뿌리를 살피고 미혼모 가정과 입양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아동복지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시행할 때는 현장의 이야기를 당위적 수사에 종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 중, 입양진행의 시스템을 정부와 지자체라는 공적 영역으로 가져오겠다는 내용을 살펴보자. 많은 이의 우려와 같이 일시에 입양업무를 공무원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기를, 민간기관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정부가 책임지고 가이드라인을 강화하여 기존 민간 인력을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이기를 바란다. 또한 입양숙려 기간을 현행 1주일보다 더 연장한다는 시책은, 미혼모에게 좀 더 정보제공과 숙고의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지 입양을 확고히 결심한 미혼모에게까지 시간을 연장하여 고통을 가중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9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참석하여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국내 이행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심의 현장에서 제시된 내용 중 주목할 사항은 모든 아동이 이용 가능한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보장하고, 그와 함께 베이비박스 금지, 익명출산제 도입 가능성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라는 점이다. 만일 이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11년 이후 한국에선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을 보낼 수 있다는 의무사항이 포함된 법 개정으로 인해 영아 살해와 인터넷 불법 영아 매매, 아동 유기가 급증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성찰한다면 익명출산제와 베이비박스가 보장된 상태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실행해야지, 사회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유엔의 권고를 앞뒤 없이 따르는 것은 생명에 대한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논쟁을 넘어 다시 아동 인권을 말하다

 

최근 한 연예인 부부가 20대인 대학생 딸을 입양하여 성인 입양이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신혼여행 때 방문한 보육원에서 만난 고등학생을 조카 삼아 지내다 편입, 졸업, 취직, 결혼 등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음을 알고 부모가 되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진보적 정책에 앞장서는 이들이라면 이러한 사연을 시혜적 온정주의라 치부할 것이다. 변호사 황필규 씨는 유엔 총회의 아동 권리에 대한 결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결의는 더 나아가 이러한 시설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이나 선의의 방문이 아동의 시설 유입을 조장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시설 아동의 80퍼센트 이상이 부모가 있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은 시급히 이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나 방문객의 선의에 대한 폄하는 멈춰야 한다. 시설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고 관심 갖는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많은 이들이 시설에 들러 봉사하고 후원하고 위탁하고 입양하길 바란다. 더불어 그간 사회가 외면했던 원가정 보호를 위해 들불처럼 관심을 일으켜야 함도 당연한 얘기다.


신영복 선생은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아무리 시급한 정책이라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진보의 시계는 멈출 수 있다. 미혼모 인권과 입양 활성화는 결코 대립 주제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시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귀히 여겨야 한다. 시설 아동 중 많은 수가 부모가 있다고 하지만, 부모가 수년간 아이를 찾지 않고 관심도 없을 때 그런 부모의 친권도 유지해야 하는가?


해외입양이 국격을 떨어뜨리는 수치스런 일이라 멈춰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혁신적 정책을 실현한다는 우월감으로 현장의 소리를 차단하기 전에, 구체적인 사람을 보기 바란다. 앞서 말한 위탁모 강은정 씨는 준희를 미국으로 보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국에서 아이를 데리러 온 입양모 앨리슨Alison 씨도 함께 울었다. 강은정 씨는 준희가 자랐을 때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사랑했음을 알기 원해 주변 입양가족들에게 아이를 위한 손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준희가 한국이란 나라를 알게 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전국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이를 앨범으로 만들어 전했다. 미국 입양부모는 은정 씨 가족을 위해 지금도 SNS로 준희의 소식을 계속 전하고 있다. 은정 씨는 자신을 한국 엄마라 칭한다. 준희가 한국을 방문할 때 언제라도 엄마 집을 찾길 원해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고 기다릴 생각이다. 준희의 방, 준희가 좋아하는 음식도 언제나 준비돼 있을 것이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는 이런 주요원칙이 있다. 아동은 우선 출신가정에서 성장해야 하지만 출신국 내에서 적절한 가정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입양을 통해 영구적 가정을 제공해야 한다고. 아동을 영구적으로 시설에 두거나 일시적인 위탁가정에 두는 국내 해결책은 국제입양보다 앞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아동의 시설 수용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협약의 기본 정신이다.


보육시설에서 봉사하다 만난 내 아이는 보육원의 가장 구석진 침대에 있던 순둥이였다. 아기를 키워본 부모들은 잘 알 것이다. 생후 1년이 되기까지는 타고난 면역력으로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기들은 여러 사람들이 돌보기 때문에 방 안에 늘 감기약 병이 줄줄이 세워져 있다. 어느 날 침대 하나가 비어 있어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아기가 기관지염으로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내 가슴도 텅 빈 것 같았던 그날, 입원한 아기가 훗날 내 아이가 될 줄 짐작하지 못했다. 너무 순해서 어른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았던 아기가, 입양 당시 아무 저항 없이 내 품에 덥석 안겨 집으로 왔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다.


입양부모라면 누구나 해보는 아찔한 상상이 있다. 자칫 내 아이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시설에서 자라 만 18세에 홀로 세상으로 나가는 상상 말이다. 한 아이라도 시설에서 나와 가정에서 성장하길 바라는 입양가족의 마음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기본정신과도 일치한다. 부디 우리 사회가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