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는 인문학적 자세; 실용적 안내서
제목만 보면 의사 개인의 경험을 담은 고백록으로 짐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의료현장의 속살과 생사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죽음을 생각하는 인문학적 자세’를 반영한 실용적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대형병원의 부와 명예를 뿌리치고 60세가 넘어 노인요양원 의사가 되었다. 그의 현장경험과 성찰의 깊이는 날카로운 표현력을 만나 책 속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껏 죽음학 서적을 꽤 접했지만, 의료현장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철학적 사유가 잘 버무려진 책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노환의 어머니를 모신 나 자신도 노년에 들어서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옛날 노인들처럼 ‘몸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때 오히려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대목을 읽었다. 눈앞에 반짝하고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저자는 노화에 순응하며 질병과 동행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노인의 마지막 역할은 자연스럽게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돌연사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던 나는 이 말에 멈칫했다. 사실 급사에 대한 열망은, 죽음 과정을 두려워하는 속내를 반영하는 건지도 모른다. 저자는 ‘돌연사를 희망하는 것은 참으로 인색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뜨끔하다. 이제 내 열망을 입 밖에 내는 일은 자제해야 할지도.
제약회사 지원 없이 환자 편에서 연구하기로 유명한 학술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의 편집장 인겔하임의 메시지도 소개했다. “질병의 90%는 의사에게 보일 필요가 없다. 의사의 진찰이 필요한 경우는 10% 남짓이며, 의사에게 보이는 바람에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내 건강과 죽음에 대해 ‘외주화’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너무 급진적인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저자는 잘 죽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누군가 말하길 ‘잘 죽는 것은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만큼 고도로 발달한 의학의 명암 탓에, 치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구급차→>연명의료→>중환자실 임종>이라는 자동 시스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암은 노화현상의 일종이니 방치하는 요법이야말로 암과의 지혜로운 공생방식’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통증이 없는 노인 암환자의 경우, 공격적 치료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초고령자의 암은 ‘일종의 장수에 대한 세금’과 같다면서 그들의 암 사망은 자연사의 한 형태라고도 했다. 참으로 속 시원한 얘기다.
그 외에도 수의壽衣 패션쇼, 생전장례식, 단식 존엄사 등에 대해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했다. 엔딩노트에 구급차, 개두술, 심폐소생술, 인공투석, 경관영양, 중심정맥영양, 정맥 수액 거부에 대한 구체적 언질이 필요함도 알린다. 이 모든 것이 백지화되지 않게 하려면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임종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환자를 연명하게 하는 이들을 가리켜 저자는 ‘무서운 가족’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깊이 새겨둘 만하다. 우리 사회는 가족이 임종을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을 고수한 나머지, 정작 당사자를 마지막까지 고문하는 일을 자행하곤 한다. 이런 상황 탓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아무 의미 없게 돼버리는 일도 생긴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은 지난하다. 집요하게 성찰하고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더하여 죽음 준비과정에서 이처럼 정직과 치열함으로 쓰인 책을 만날 수 있다면 큰 행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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