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어게인

시[詩]어게인- 8 이것이 위로의 말인가

디토1 2024. 3. 6. 22:01

[]어게인- 8

이것이 위로의 말인가

 

조문을 갔을 때

차라리 하지 않으니만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상투적인 조언을 늘어놓는 것이지요.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해.

-이젠 잊어야 하니 보내줘야 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괜찮아질 거야.

-남은 가족을 보고 열심히 살아야 해.

-나도 가족을 잃어봐서 네 마음을 잘 알아.

-그래도 아직 감사할 일들이 있잖아.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만 지게 하신대.

-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데려가신 거야.

-신의 계획이니 받아들여야지.

 

이런 말들은 대개

위로보다는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을 위로자, 조언자 등 우월한 위치에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고통을 내 가슴으로 옮겨와서

함께 아파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줄 말이 뭐가 있을까요.

 

그러나

손택수 시인의 관용구에 기댄다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그가 상대의 눈빛을 자신의 말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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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준 말

 

 

                                        손택수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힌다

 

 죽음을 기다리는 병실에 병문안을 갈 때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쾌유를 빕니다

 이런 유창한 관용구는 뭔가 거짓만 같은데

 그럴 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내게 구박만 받던 관용구는 늙은 아비처럼 나를 안아준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좋

으니

 내 것이 아닌 말이라도 좀 흘러나왔으면 싶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말이 그치는 그때,

 어둠 속 벽을 떠듬거리듯 나는 말의

 스위치를 더듬는다

 

 그럴 때 만난 눈빛들은 잘 잊히질 않는다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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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오르낭의 매장은 화가 쿠르베가 조부의 장례식을 그린 것입니다. 당시 화단은 이 그림의 파격성에 많은 비난을 퍼부었다고 해요. 거대한 화폭에 담긴 사람들은 서로 시선의 방향이 다르고 표정도 다릅니다. 한쪽으로 십자가가 멀리 보이지만 화면 맨 앞의 개는 고개를 돌려 반대 방향을 보고 있어요. 가히 신성모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구스타프 쿠르베(Gustav Curbet),오르낭의 매장(1849), 315 × 668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출처:https://www.sedaily.com/NewsView/26DHDA7SAJ>